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08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칼자국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받고 느낀 것들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국이며 사랑이며, 슬픔이다. 어머니가 해준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을 먹으며 간과 창자 심장과 콩팥은 점점 자란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아프다. 엄마의 장례식장에 온 딸이 칼을 통한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에피소드 같은 작은 사건들을 늘어놓는다. ‘맛나당’ 이라는 칼국수집을 억척스럽게 꾸려오고, 아버지가 몸매가 좋은 때밀이 여자와 커플링을 나눠끼는 것을 보고, 화투패에 가서 판돈을 올리며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어머니의 삶이다. 그 삶 속에는 어머니의 슬픔과, 생활력과 고됨이 있다. 어머니의 순탄치 않은 삶에는 항상 칼이 있다. 그 칼은 마치 어머니이기도 하다. 칼을 수십 번씩 갈며 자식들을 먹여 살린다. 닳고 닳는 칼처럼 어머니 자신도 닳아간다. 하지만 칼은 어머니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자식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칼자국을 느낀다. 나는 어머니가 떠나고 난 후 허기를 느낀다. 마지막에 어머니가 쓰던 칼로 사과를 맛있게 깎아 먹으면서 그 칼자국이 계속 이어져갈 것을 암시한다. 김애란의 소설에서는 유독 아버지가 나약하거나 부재인 상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달려라,아비’ 에서도 그랬고 칼자국에서도 드러난다. 칼자국에서는 그 시대의 상황이나, 가족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런 것들과 대조되어 어머니의 삶 그 자체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칼자국을 읽으면서 문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감각적이면서도 톡톡 튀는 문체들을 읽는데 재미를 더해주었다. ‘내 컴컴한 아가리 속으로 김치와 함께 들어오는 어머니의 손가락 맛이랄까. 살맛은 미지근하니 담담했다. 식칼이 배추 몸뚱이를 베고 지나갈 때 전해지는 그 서걱하는 질감과 싱그러운 소리가 나는 참 좋았다. 어둑한 부엌 안, 환풍기 사이로 들어오던 햇빛의 뼈와 그 빛 가까이에 선 어머니의 옆모습’ 이라는 부분이라던지, ‘오른손이 칼질을 하는 동안 왼손 손가락 두 개는 칼 박자에 맞춰 아장아장 뒷걸음쳤다.’ 라는 부분을 읽을 때면 상상이 가면서 문체가 재밌고 참신했다. 담담하고 일상적이게 이어가지만 그 속에 분명히 매력이 있다. 그래서 김애란 소설을 참 좋아하는데, 칼자국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가산 이효석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효석문학상이 올해로 9회를 맞이하였다. 2008년 제9회 수상작으로는 김애란의 「칼자국」이 선정되었다. 수상작인 「칼자국」은 어머니에 대한 딸의 이야기를 대담하면서도 능청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새롭게 씌어진 신세대의 어머니의 초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궁벽한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남자들의 서글픈 욕정을 드러내고 상품화한 섹스의 범람 속에서 순정의 장면을 포착한 김도연의 「북대」, 감각적인 구어체 표현과 대화, 매끄러운 구성이 돋보이는 김윤영의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3」, 어머니의 상실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으로 수락하는, 또는 자기 존재의 근원 으로 이해하는 남자의 이야기인 백가흠의 「그런 근원」, 상처나 슬픔을 모두 자신만의 푸른 괄호 속에 넣어버린 한 촌부(村婦)의 이야기인 손홍규의 「푸른 괄호」, 타인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지, 어느 정도나 개입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정미경의 「타인의 삶」, 전통적 세계에 대한 체험적 관찰에서 우러나오는 작가 특유의 유머가 빛나는 한창훈의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 등이 추천 우수작으로 실려 있다.


제9회 수상작
김애란 │ 칼자국

수상작가 자선작
큐티클

기수상작가 자선작
박민규 | 낮잠

추천 우수작
김도연 | 북대
김윤영 |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백가흠 | 그런, 근원
손홍규 | 푸른 괄호
정미경 | 타인의 삶
한창훈 |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

수상소감
심사평
김애란의 문학적 자전
내가 만난 김애란 1
내가 만난 김애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