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접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데, 번역의 문제인지 원본의 문제인지 진도가 너무 더뎠다.
그리 두껍다고 할 수도 없고 책의 글씨가 작다고도 할 수 없는 책인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딱히 번역의 문제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콕 짚어서 이런 부분이 문제라고 하지 못하겠다.)
기니guinea 란 영국의 옛 금화로 보통 상거래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상금, 사례금, 기부금 등의 표시에만 사용되는 귀한 돈을 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3기니 가 책의 제목이 된 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설정한 가상 상황 때문이다.
(물론 이 상황이 실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가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한 변호사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반전을 위한 기금 조성에 기부를 하고 단체에 가입할 것을 권유한 편지를 받고 답장하는 것이 그 설정.
버지니아 울프는 작심이라도 한 듯이 꼼꼼히 따져가며 기부를 할 것인가, 하지 않는다면 다른 어느 곳에 기부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읽기는 힘든 책이었지만 이 책의 문제제기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이 같은 차이점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게 분명하니까요. 우리가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테죠.
...그러니 우리가 당신에게 줄 수 잇는 도움도 당신이 자신에게 주는 도움과 달라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도움의 가치는 바로 그런 차이 자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이 차별 받는 이유였던 차이 , 바로 그것에서 거꾸로 해결책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잘난 남성 부르주아들을 비웃어 준다. 당신들 과 똑같은 길을 가지는 않겠다고. 행여나 권리를 찾게 되더라도.
"대부분의 우리 역사를 통해 조국은 나를 노예처럼 다루어 왔다. 조국은 나를 노예처럼 다루어 왔다. 조국은 내가 교육을 받지도, 재산을 소유하지도 못하게 했다. 만약 내가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우리 조국이 더 이상 나의 조국이 아니게 된다. 우리 조국은 스스로 나를 보호하는 수단마저 부정하며 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연간 거액의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불하도록 강요한다. 그러고서도 나를 지킬 능력이 거의 없어서 벽에다 공습 경보 라고 벽에다 써놓고 있다." (이 부분을 입력하고 나니 번역의 문제가 약간씩은 있다는 걸 알겠다.)
소피아라는 그(젝스 블레이크)의 딸은 수학을 가르쳐서 약간의 돈을 받게 되었는데 그 돈을 받아도 될지 아버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즉시, 또 완강하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죠. "사랑하는 딸아, 네가 교사로서 돈벌이를 생각하고 있다니 내 생전에 그런 얘긴 처음이다. 얘야, 그따위 일은 너를 깎아내리는 짓이므로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네가 명예롭고 보람 있는 교사 일을 그냥 한다면 오히려 기쁠 것이다...... 그러나 일을 해서 돈을 받는 것은 완전히 경우가 다르고 애석하게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천박하게 볼 거야."
이런 말은 아주 흥미로운 진술이지요. 소피아는 실제로 그 문제를 갖고 논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소피아는 왜 돈벌이가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깎아내리는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톰 오빠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은 어느 누구도 비천하게 보지 않는데 말입니다. 젝스 블레이크 씨는 "그건 아주 다른 문제란다. 톰은 남자이며, 남자로서...... 아내와 가족을 부양할 의무가 있다"고, 그래서 톰은 "의무의 명백한 진로"가 있다고 설명했지요.
소피아는 아직도 아버지의 말이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피아는 가난한 자신에게 돈은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믿는 바로는 완벽하게 정당화할 수 있고 정직한 자부심을 돈을 버는 데서" 강하게 느꼈다고 논박했지요. 이렇게 추궁을 받자 젝스 블레이크 씨는 마침내 딸이 돈을 받는 데 반대하는 진짜 이유를 반쯤만 투명하게 설명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대학에서 주는 돈을 받기를 거절한다면 자신이 그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지요. 그러므로 아버지가 반대하였던 점은 딸의 돈벌이가 아니라 다른 남자한테 돈을 받는 것임이 분명해졌습니다.
꼬치꼬치 따지는 소피아가 아버지가 한 제안의 야릇함을 그냥 놔둘 리 만무합니다. "그 경우 학장에게 저는 봉급 없이 기꺼이 일하겠습니다 가 아니라 아버지께서는 내가 대학에서 돈을 받기보다 자신에게서 돈을 받아가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럼 학장은 우리 둘 다를 우습고 어리석은 사람들로 여길 텐데요"라고 소피아가 말했죠. 학장이 젝스 블레이크 씨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우리는 아버지 행동의 근원에 숨어 있는 감정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인용이 길었지만, 이 부분은 읽어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이 광경이.
물론 (나도 읽으면서 순간순간 생각이 났던 거지만) 울프이 이 저작은 남성 사회주의자들에게 꽤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줄곧 우리 라는 범주를 여성 으로 잡지 않고 교육 받은 계층의 딸들 로 부드럽지 않게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층의 여성들을 배타적으로 인식한다는 그들의 비판이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드럽게 모든 계층의 여성을 한 단어 여성 으로 묶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작부터 한계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라. 어차피 울프는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부드럽지 않게 구별하면 노동계층의 여성을 소외시킨다는 비판을(그러나 정작 소외시키는 것은 누구였을까?)
부드럽게 구별하면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계층에 대한 인지가 전혀 없이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비난을.
여기서 길게 이야기할 것은 아니지만, 여성주의 에 대해 쏟아지는 대부분의 비난이 이런 식이다. 물론 지금의 한국에서도.
당신들 의 단체에 가입하지 않되,꼼꼼히 따져보고1기니를 조건 없이 신중하게 기부하겠다는 그녀의 태도와 믿음은
차이 와 연대 에 대하여 다시 돌아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읽을 때는 꽤나 괴로웠지만, 막상 끝내고 나니 남는 것이 꽤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책. (물론 다시 읽을 거 같진 않다;;ㅎㅎㅎ)
양장이 되고 추가된 부분이 생기면서 가격이 너무 뛴 것이 흠이라면 흠.
1930년대의 버지니아 울프가 남성과 전쟁의 시대 21세기에 보내는 3통의 답장.
박인화의 「목마와 숙녀」 덕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울프는 부드러운 에세이스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에 열심이었고, 페미니즘의 아이콘이었던 울프에 대해서는 그나마 알려져 있었으나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교류했던 사상가로서의 울프는 우리에게 다소간 낯설기까지 하다. 이제 이 책 3기니 를 통해 독자들은 평화를 꿈꾸었던 울프의 단호한 반전 메시지를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던 전쟁의 시기를 지나 온 울프가 던지는 속 시원한 일갈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울프의 3기니 는 모두 세 부로 나뉘어져 있다. 책 전체는 변호사인 남성이 ‘나’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 형식을 띠고 있으나 각 부는 독립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나름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전쟁을 막기 위한 활동에 기부금을 내 달라는 ‘남성 변호사’에게 보내는 답장을 통해 울프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울프는 자신이 가진 3기니 가운데 단 1기니만, 편지를 보낸 ‘남성’에게 보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나머지 2기니를 어디에 기부할 것인지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먼저 「첫 번째 기니」에서는 여성의 교육을 위해 대학 기관 설립을 위해 1기니를 기부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 기니」에서는 여성의 전문직 진입을 돕는 데 1기니를 기부하겠다고 했으며, 「세 번째 기니」에 와서야 편지를 보낸 ‘남성’에게 3기니 가운데 1기니를 보내겠노라 답하고 있다. 전쟁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여성의 교육과 사회 진출과 맞물려 저술한 명민한 울프의 사유에 저절로 찬탄하게 되는 구성이다.
여는글
20세기의 아이콘이었던 그녀, 버지니아 울프 - 마크 허시
책머리에
여성을 위한 공산당 선언, ??3기니?? ― 제인 마커스
첫 번째 기니
울프의 주석
두 번째 기니
울프의 주석
세 번째 기니
울프의 주석
부록
버지니아 울프 연대기
버지니아 울프 관련 참고문헌
3기니 관련 참고문헌
옮긴이의 글
혜안을 지닌 빼어난 ‘보통 독자’들을 기다리며 - 태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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