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넘쳐나는 시대다. 모자란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고가는 말일까. 본래 말이 없고 잘 못하는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친구를 사귀려면 말을 해야 한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그렇다고 억지로 친구를 사귀거나 한 건 아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내 방식대로 친구를 사귀려 한다. 예전에 나는 말하기보다 친구가 하는 말을 듣고 가끔 편지를 썼다. 편지가 있어서 내가 말을 조금 했다. 사람은 혼잣말도 하지만 누군가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말하는 데 쓸 힘이 별로 없는지도 모르겠다. 글로 쓰는 것보다 말로 하는 건 더 힘이 든다. 나만 그런가. 나는 말하기 힘들어서 사람 사귀는 게 어렵지만, 지금 사람은 휴대전화기 때문에 사람 사귀기 어렵다고 한다. 누군가를 만나도 그 사람과 이야기 하기보다 자기 휴대전화기를 들여다본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보다 멀리 있는 가상세계 사람한테 더 마음을 쓰고 자신을 나타낸다. 실제 자신과 온라인 속 자신이 아주 다른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 건 여전히 책 속에서만 본다. 많은 사람이 자신한테 관심을 가지면 좋겠지. 그런 마음 아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자신으로 꾸미는 게 늘 좋을까 싶기도 하다(내가 그런 걸 잘 못해서).
난 SNS가 아닌 인터넷이라 하는구나. 사진을 올리거나 짧게 쓰는 곳은 안 해서 그렇다. 나처럼 사람 사귀기 힘든 사람한테 인터넷은 좋다. 어떤 말에 바로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바로 무언가 오고가는 곳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데는 나와 맞지 않다. 인터넷 안에서 말을 좀더 하지만, 마음에 없는 말은 안 한다. 이 책을 보니 인터넷 안에서는 자기 감정을 싣지 않고 다른 사람 감정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까. 난 아니다. 다른 사람 감정을 읽으려 한다. 그래서 좀 힘들지만. 난 현실과 인터넷이 아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낯가림 심한 나는 인터넷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이런 말로 흘렀는지. 어쨌든 난 인터넷 안에서 사람 사귀는 걸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 좋아할 사람 별로 없겠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 인터넷 안에서 만나고 그 만남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는 사람도 많으리라고 본다. 그런 이야기보다 안 좋은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져서 아쉽구나. 인터넷 안과 현실에서 사람이 아주 다르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 세상은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은 다 다른데. 나한테 잘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에서 어느 쪽이 좋으냐 하면 잘생긴 사람이라 할지 몰라도 그 사람 성격이나 생각이 별로면 싫을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송이든은 인스타그램에 자기 사진을 올렸다. 자연스러운 사진이 아니고 포토샵으로 손본 거다. 그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이 이든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한번 만나자고도 한다. 그 안에 이든이가 중학교 때 좋아한 아이 경우가 있었다. 이든이는 용기를 내서 경우를 만나기로 한다. 이든이는 경우와 만나기로 한 곳에 가서 자신을 밝히지 않았다. 경우는 정말 얼굴만 예쁘면 다 좋은 걸까. 이든이가 얼굴에 마음을 쓴 건 학교 선생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든이 중학교 때 선생님가운데 한분은 말끝마다 ‘못생겨가지고’를 붙였다. 선생님이 그러다니. 경우한테 자신을 밝히지 못한 이든이는 엄마한테 성형수술을 시켜달라고 한다. 성형까지 생각하다니. 얼마 뒤 엄마 둘이 친해서 알게 된 친구 빛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빛나는 인터넷 안에서는 밝았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일로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빛나는 모든 게 끝났다 생각했을지도. 빛나가 누군가한테 그 일을 말하거나, 누군가 빛나한테 그게 다가 아니다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든이 엄마는 이든이가 걱정되었나보다. 여름방학에 이든이를 억지로 몽골로 보냈다. 난 억지로 무언가를 하게 하는 일 싫다. 그 일이 이든이한테 좋은 영향을 주었으니 다행이지, 늘 결과가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 일부러 시련에 맞서게 하는 거 처음 보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몽골에 가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란다. 이든이는 몽골에서 자신을 느낀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으면 자신이 작게 느껴지기보다 자신이 더 크게 느껴질까. 많은 사람이 사는 도시는 어디든 막혔다. 건물과 건물로, 빈 곳이 거의 없다. 도시 모습이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기 어려운 걸까. 이든이는 같은 조가 된 분홍할머니와 허단과 우석 오빠와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처음에는 그런 게 편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달라졌다. 휴대전화기를 쓸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한 것도 있겠지. 많은 사람이 돈을 내고 외딴 곳에 가는 건 편하지 않은 것을 가끔 느껴보고 싶어서일지도.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몽골이 지금 그대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곳에 무언가를 짓겠다는 사람 없겠지.
난 인터넷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만 마음을 쓰면 안 되겠지. 이든이는 잠시 거기에만 매달리기도 했다. 사람도 가까이에서 만나고 부딪쳐야 더 깊은 관계가 되기도 할 거다. 인터넷 안의 관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 좀 낫겠다. 작은 세상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딘가에 떠나는 건 자신을 넓히려는 뜻도 있겠지. 드넓은 들판에서 자신을 느끼는 일은 어떨까. 넓은 세상에서 보면 자신이 아주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것 때문에 애틋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희선
‘좋아요’를 눌러주는 낯선 사람이 없어도
존재만으로 충분한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
청소년문학을 대표하는 시간을 파는 상점 작가 김선영의 기대작! 열흘간의 낯선 바람 은 ‘시간’에 이어 ‘존재’라는 철학적 주제를 작가 특유의 탄탄한 이야기와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존재감을 SNS 프레임 안의 세상에서 찾는 십대 소녀 이든은 혼자 떠나게 된 몽골 여행을 통해 실재의 세계를 오감으로 느끼며 진정한 ‘나’와 마주하게 된다. SNS 속 세상을 현실보다 더 생동감 있는 세계라고 믿는 십대가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존재 자체로서의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저마다의 동굴
내동댕이쳐지다
핑크할머니와 나
이십 일간의 낯선 사람
은하수는 흐르고 별똥별은 지고
걸어도 걸어도
그들만의 방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발문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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